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핀란드 내전 (문단 편집) === 독일의 패망과 핀란드의 재독립 === 승리한 백군은 재분열되었다. 한쪽은 왕당파였고 다른 한쪽은 공화파였다. 왕당파는 옛 협조파인 핀란드당, 그리고 옛 호헌파인 청년 핀란드당 당내 우파인 제비파, 그리고 스웨덴계로 이루어졌다. 공화파는 청년 핀란드당 당내 좌파인 참새파와 농업동맹으로 이루어졌다. 1918년 5월 독일군의 감시 하에 왕당파 일색의 [[유호 쿠스티 파시키비]] 원로원이 성립되었다. 적군의 봉기에 연루된 사람은 모조리 제명되어 좌파는 세 명밖에 남지 않았다. 독일은 소비에트 러시아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으면서 핀란드에 대한 종주권을 확인받았다. 만네르헤임 대장은 내전 승리의 여세를 몰아 러시아 [[페트로그라드]]를 공격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독일은 겨우 매듭지어 놓은 동부전선을 다시 들쑤실 마음이 없었고 독일의 영향을 받던 원로원은 만네르헤임의 제안을 기각했다. 자기 제안이 기각되자 빈정이 상한 만네르헤임은 5월 25일 총사령관직을 내던지고 낙향했다. 10월 9일 의회와 원로원은 독일의 압력에 의해 [[빌헬름 2세]]의 매제 [[프리드리히 카를|프리드리히 카를 폰 헤센카셀 공자]]를 독일의 [[보호국]]인 [[핀란드 왕국]]의 국왕으로 선출했다. 겨우 러시아로부터 독립했더니 이번에는 독일에 종속될 위기에 빠진 것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덧붙이자면 서양에서 신생 중소국들이 국왕을 '수입'해 오는 일은 꽤 흔했던 일이다. 대표적인 예시만 해도 독일 [[바이에른]] [[비텔스바흐 가문]]과 [[덴마크]] [[글뤽스부르크 왕조]]에서 국왕을 데려온 [[그리스 왕국]], [[루마니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등이 있다. 이 중 루마니아 왕국은 [[페르디난드 1세|독일 출신 국왕]]이 독일 제국의 [[빌헬름 2세]]와 친척임에도 불구하고 국익에 의거하여 동맹국에 선전포고하는 결정을 내려 가문 호적에서 파이기까지 했다. 당시의 핀란드가 독일의 속국이 되었다는 건 독일인을 국왕으로 들여왔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의회와 원로원이 독일의 압력에 굴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 제국이 11월 11일 패망하면서 핀란드에 주둔하던 독일군은 12월 16일 핀란드에서 철수했고 프리드리히 폰 헤센카셀 공자는 왕위를 포기하며 핀란드는 완전한 독립을 이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